정치경제

제목 일본, 엔화가치 하락에도 제로금리 유지 가능한 배경
등록일 2022-11-11
잃어버린 10년이 금리 안정에 한 몫 완전고용에도 임금인상 제자리 과도한 저축과 소비부진이 인플레이션 막아
조세일보
 
아베노믹스에 따른 통화증발이 최근의 엔화 가치 폭락으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이자율이 낮게 유지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시아 타임스 다케시 다스히로(TAKESHI TASHIRO)는 일본 경제의 매우 특이한 현상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지난 9월 3%까지 상승했지만, 미국의 8%, 영국의 10%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불충분한 총수요와 과도한 민간저축, 투자기회 부족 등 전반적인 측면에서 일본 경제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에도 일본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양적 완화(통화팽창)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훨씬 낮은 인플레이션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상당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에는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매우 낮은 환율이 낮은 임금인상과 인플레이션이 퍼즐처럼 얽혀 있다는 것이다.

엔화 약세가 거시경제 분석에 따른 예측보다 인플레이션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정책금리를 계속 유지하는 반면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고 그 결과 엔-달러 환율은 30%가 하락했다.

지난 9월 엔화는 2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이에 정부도 1998년 이후 처음으로 통화가치를 떠받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했다. 통화가치 하락은 수입물가를 상승시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높은 인플레이션이 없는 상태에서 엔화의 약세는 통화가치 하락의 영향이 크지 않다는 선례가 되고 있다. 지난 9월 엔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48%까지 상승했지만 소비자 물가는 소폭 상승에 그쳤다.

역시 아베노믹스가 시행되는 동안 엄청난 통화증발로 인한 통화가치가 하락했어도 인플레이션 상승은 제한된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일반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거의 완전고용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9월 기준 실업률은 2.6%였지만 임금은 인플레이션 상승에 미치지 못했다. 상품가격이 인상되면 임금도 인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제조비용의 상승을 가격에 반영하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으로 이어지고 기업은 다시 상품가격을 인상하는 순환고리가 형성된다.

그러나 일본의 임금인상은 거의 완전고용 상태임에도 이러한 일반적 패턴을 따르지 않는바 다음 몇 가지를 통해 이상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총수요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 2분기에야 코로나 19에서 GDP가 회복되기 시작,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코로나 19 이전 2019년 소비세가 인상되기 전 정점보다 현저히 낮은 성장률이 뒷받침한다.

다음으로 1990년대 금융위기 이후 민간 부분의 경제 상황은 크게 개선되었지만, 민간저축 또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가계가 소비 대신 저축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예금은 증가했으나 노동 분배는 감소했다. 특히 대기업의 노동소득 분배 감소가 두드러졌다. 금융위기 이후 정부를 제외한 기업, 가계 등 어떤 민간 부분도 순차입 상태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금융위기를 일으킨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 GDP 증가가 잠재성장률이 미치지 못하는 소위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르는 저성장기에 들어섰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왜 일본이 엄청난 정부 부채에도 굴러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감소하는 인구를 고려한다면 ‘잃어버린 수십 년’ 동안의 성과는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1인당 GDP 성장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으며 실업률도 매우 낮고 기업이나 가계부채로 인한 불확실성도 거의 없다.

다시 말해 투자기회의 부족과 인구 통계학적 변화로 인해 민간저축이 과도하게 높은 것이 경제 활성화에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지금 당장 써버리는 것보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것을 선호하면서 금융기관에 돈은 넘치는데 대출을 받을 사람은 부족해 저금리가 불가피한 구조가 됐다.

기대수명의 연장은 노후 자금을 위한 저축 증가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현재 소비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소비가 감소하면서 물가가 하락하고 이에 따라 이자율이 하락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엔화 약세 속에서 낮은 인플레이션 계속되는 현상은 막대한 민간저축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주요 과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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