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

제목 L자형 침체 온다…기업 '내핍경영' 찬바람, 가계도 지갑 얇아져
등록일 2022-11-14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내년 경제 진단 "IMF·글로벌 위기때와 달라…점점 어려워지는 L자형 침체" 경기침체 근거로는 '미매각 급증 회사채 시장' 들어 "내년 54조원 만기…사업규모 줄이는 것밖에 대안 없어" 경기부양 '금리인하 변수' 있다지만…"내년엔 기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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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한국경제가 'L자형' 장기 침체로 들어설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러한 전망 속에서 기업들은 사업 규모를 줄이는 식의 비상경영에 들어가고, 소득이 줄어드는 가계도 내핍생활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도심 일대 주요 기업체 건물들이 보이고 있는 모습.(사진 연합뉴스)
내년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잿빛'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과거 위기때 보였던 V자형의 회복이 아닌 L자형 장기침체가 전망되고 있다. 기업들도 내년 경영환경이 어려울 것이라는 가정 아래 보수적인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비상경영 수위가 높아진다면, 소득이 줄어드는 가계도 내핍(소비를 줄이는)에 들어가 내수침체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지난 13일 KBS 1라디오 '홍사훈의 경제쇼'에 출연한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년에 경기 대침체가 올 가능성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경제위기 이 3번이 위기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고, 2023년은 위기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2023년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면서까지 어려워진다 보다는 점점 어려워지는 L자형 침체"라고 말했다.

과거 경제위기 때는 어땠을까. 김 실장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때인 1997~1998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5.5%대, 2020년 팬데믹 경제위기 때는 마이너스 0.7%였다. V자형으로 움푹 파였다가 제자리로 갔다는 게 김 연구실장의 설명이다. 그는 "2023년부터는 L자로 계속 저성장·어려운 국면"이라며 "부도나 구조조정, 고용침체 등 안 좋은 것들이 겹겹이 쌓여 어떻게 보면 체감으로는 더 안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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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훈의 경제쇼플러스' 방송화면 캡쳐, 화면 오른쪽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한국경제가 둔화가 아닌 침체로 빠질 수 있다는 징후로 '회사채 급랭'이 꼽힌다. 김 연구실장은 "침체로 전개되는 궁극적인 배경은 채권시장에 있다"며 "채권금리가 계속 고점을 향해 갱신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아무리 높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해도 매입해줄 사람을 못 찾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인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는 소리다. 채권 미매각률은 올해 7~9월까지 20% 수준인데, 작년 같은 기간엔 0.1%였다.

앞으로가 문제다. 기준금리가 고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에 수십조원에 달하는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내년 상반기 채권만기가 도래되는 게 54조원"이라고 말했다. 만기가 돌아오면 자금을 상환하거나 차환(회사채를 새로 발행해 만기 회사채를 갚는 것)해야 하는데, 지금 국면에서는 새로 채권발행을 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이렇게 된다면 기업들의 선택지는 사업 규모 축소다. 김 실장은 "많은 기업들의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하는데, 보통 나오는 얘기가 여러 사업 중에 뭐를 정리할까가 회의 내용"이라며 "사업 규모를 줄이는 것밖에 선택의 대안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회사 메타 플랫폼이 대규모 해고(전체 직원 13%)를 단행한 것과 애플이 아이폰14 증산 계획을 철회한 부분이 대표적인 예다. 김 실장은 "(우리)대기업들이 사업 규모를 축소시키면, 채권금리보다도 수익률이 떨어지는 사업은 우선 정리대상이 될 것"이라며 "투자 규모를 줄이고 희망퇴직 받고 하면서 고용충격이라는 변수는 2023년 2분기에 숫자를 받아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기업발(發) 내핍 경영'이 다른 기업들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 전체에 찬바람이 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채권 같은 시스템적인 리스크에 기업들이 다 박살날 수도 있다'라는 사회자의 입장과 궤를 같이 하면서 "흑자 도산도 있다"고 말했다.

고물가에 따라 가계도 가난해질 수 있다. 김 실장은 "구조조정이나 고용충격으로 인해 소득이 줄어드는 것 말고도, 내년도 올해만큼은 아니지만 상반기에 4~5% 고물가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를 반영한 한 가구당 평균소득이 385만원 정도 되는데, 실질소득을 계산하면 360만원 정도"라고 했다. 최근 금리인상 기조까지 더하면 전망이 더 암울하다. 김 실장은 "대출금리가 2022년 끝자락에 8~9% 갈 거고, 2023년에는 더 높게 갈 가능성이 있다"며 "변동금리 대출자들의 이자상환 부담이 커져, 실질소득은 더 줄어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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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 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 등으로 한국 경제가 예상보다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을 1.8%로 내다봤다. 당시 KDI는 '인플레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기조는 유지하더라도 경기둔화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둔화하면서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김 실장도 "기대가 될 만한 변수가 있다"며 "2023년 연중에 기준금리를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인하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의 급격한 종식이라든지, '이제 물가는 잡혀서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시각이 짙어졌을 때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2023년 연내에는 큰 기대를 걸긴 어렵다"고 말했다.

부동산발(發) 경제 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김 실장은 "부동산의 폭락의 개념을 주간 단위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 증감율로 보면, 마이너스 0.3%를 넘었다"면서 "지금은 매매가격 조정에 초입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시장은 주식·외환시장과는 달리 선행이 아니라 동행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준금리 고점이 2023년 2분기가 될 거라서, 그 시점에 조정률이 더 클 것으로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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