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규판례

제목 덤핑방지관세 부과에 관한 기획재정부 규칙, 항고소송 대상 아냐
등록일 2023-06-08
조세일보
◆…법무법인 율촌 박상현 변호사.[사진=법무법인 율촌 제공]
별도의 부과처분이 없는 이상 특정 공급자 및 물품에 대하여 덤핑방지관세율을 적용하도록 하는 시행규칙은 항고소송의 대상으로서의 처분이 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최근 "이 사건 시행규칙은 수입된 덤핑물품에 관한 세관장의 덤핑방지관세 부과처분 등 별도의 집행행위가 있어야 비로소 상대방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유로, 이 사건 시행규칙의 처분성이 인정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본안판단으로 나아간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항고소송이란 행정청의 처분, 재결, 부작위에 대하여 제기하는 소송을 말한다.

이 중 항고소송의 대상으로서의 처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행정청의 어떠한 행위가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에 해당하여야 한다.

이처럼 처분은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이어야 하는 까닭에 일반적∙추상적 성격을 갖는 행정입법은 항고소송의 대상으로서의 처분이 될 수 없다.

가령 행정청이 건축법을 위반한 자에게 그 위반을 이유로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면 그러한 부과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처분이 되지만, '건축법을 위반한 자에게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시행령 내지 시행규칙 자체는 일반적∙추상적 성격을 갖는 행정입법일 뿐 처분은 아닌 것이다.

다만 행정입법이라고 하더라도 별도의 집행행위의 개입 없이도 그 자체로서 직접 국민의 구체적인 권리의무나 법적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등의 법률상 효과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항고소송의 대상으로서의 처분에 해당할 수 있다.

예컨대 조례는 대표적인 행정입법 중 하나인데, 특정한 초등학교 분교를 폐지하는 내용의 조례는 별도의 집행행위의 개입 없이도 그 자체로서 직접 국민의 구체적인 권리의무나 법적 이익에 영향을 미치므로 처분에 해당한다.

또한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급여 대상이 되는 약제의 처방기준과 상한금액을 정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고시 역시 그 형식은 행정입법이지만, 다른 집행행위의 개입 없이도 제약회사, 요양기관, 국민건강보험가입자 및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이의 법률관계를 직접 규율하므로 처분에 해당한다.

행정청의 어떠한 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으로서의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법원은 해당 행정청의 행위가 위법한지 여부, 즉 본안을 판단조차 하지 않기에 처분성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스포츠 경기에서 본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격 미달로 출전이 제한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사건에서는, 특정 사업자들이 공급하는 특정 일본산 공기압 전송용 밸브에 대하여 덤핑방지관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시행규칙이 항고소송의 대상으로서의 처분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다.

덤핑방지관세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통하여 부과된다. 먼저 덤핑으로 인해 국내에서 피해를 받은 자 등 요건을 갖춘 자가 무역위원회에 조사의 신청을 한다. 무역위원회는 덤핑이 있었는지 여부, 덤핑에 따른 국내산업의 피해 여부 및 이 둘의 인과관계에 대해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무역위원회는 상대방 국가의 대상 업체 또는 외교통로를 통해 조사에 관한 내용을 통지한다. 이 조사과정에서 대상 업체는 덤핑이 없다는 등의 주장을 할 수 있다. 무역위원회는 최종 조사내용과 덤핑관세율 등을 정하여 기획재정부에 통보하고, 기획재정부는 이 내용을 시행규칙의 형태로 고시한다.

대법원은 위 시행규칙의 존재만으로 국민의 권리의무나 법률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고 관세부과처분이라는 별도의 집행행위가 있어야 비로소 국민의 권리의무나 법률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보아, 위 시행규칙의 처분성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위 시행규칙은 특정 사업자가 공급하는 물품에 대하여 일정한 세율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별도의 집행행위의 매개 없이도 그 자체로 특정 사업자가 공급하는 물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법률효과를 발생시킨다.

게다가 사업자들에게 관세부과처분을 기다렸다가 해당 부과처분이 있은 후에야 비로서 이에 대하여 다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권리구제의 기회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위 시행규칙의 처분성을 인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심지어 대법원은 2009년경에는 위 시행규칙과 유사한 형식과 내용의 시행규칙에 대하여 처분성이 인정되는 것을 전제로 본안판단으로 나아간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특정 사업자들이 공급하는 특정 중국산 도자기질 타일에 대하여 덤핑방지관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시행규칙에 대하여 항고소송의 대상으로서의 처분성을 인정한 것이다.

양 시행규칙은 그 근거가 되는 법령, 규율 내용 및 방식이 매우 유사한바, 대법원에서 상반된 결론을 내린 구체적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대상판결은 위 시행규칙의 처분성을 부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항고소송을 통한 사법심사의 범위를 축소시켰다. 대법원은 기존 선례와 정합적이지 않은 판단을 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이유를 설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대상판결의 원고가 약 7년간의 소송을 진행한 결과 1, 2심을 승소한 후 대법원에서 각하 판결로 사건이 끝난 점을 고려하면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대법원 2022. 12. 1. 선고 2019두48905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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